1.
신도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찻잔을 들어올렸다. 반대편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니다, 아는 사람이다. 차에서 올라온 따뜻한 기운을 흠뻑 들이쉬며 생각했다.
하늘색으로 굽이치는 머리카락에 가려 눈이 보이지 않는 상대방은 빙그레 웃으며 함께 찻잔을 들었다. 달그락대는 컵받침 소리 대신 핸드벨이 울리는 듯한 깊고 청명한 소리가 났다. 소리는 곧 오후의 햇살로 하얗게 번진 응접실로 퍼져 나가며 형체를 띄었다. 신도는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잔을 내려놓았다-예의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가는 현을 튕기는 소리가 공간을 맴돌다가, 나타났다가, 서서히 흐려졌다. 신기한 듯 소리의 형체를 시선으로 좇는 신도를 바라보던 상대방이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당신은 음악인가요?」"
한참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제 목소리가 사람의 언어인 동시에 피아노의 선율로 들리는 것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신도는 입을 다시 벌렸다. "「음악의 언어로군요. 그렇죠?」" 같은 피아노 소리였지만 음조가 달라졌다.
상대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도, 커프가 달린 보라색 연미복도 아주 눈에 익은 것들이었다. 이렇게 자세히 마주볼 기회는 정작 없었지만.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2.
수면 주기가 끝나기도 전에 튕겨나오다시피 깬 신도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멍한 정신으로 꿈을 되짚었다. 잊어선 안 되는 꿈이었던 것 같아 협탁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집어들어 메모장을 켰다. 흐린 눈을 비벼가며 한참 자판을 두드리다가 위로 올려 슥 읽어봤다. 추상적이고 횡설수설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알아볼 순 있겠다 싶어 저장 버튼을 누르고 다시 내려놓았다. 몸을 누인 채 꿈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뭔가 말하려고 왔던 것 같은데.
불이 꺼진 방 안에서도 새카만 그랜드 피아노는 눈부시게 빛을 냈다. 거대한 몸체에 맺힌 밤빛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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